처음 같이 담근 김치 한 통
11월 끝자락, 예비부부가 처음 함께한 김장. 배추를 뒤집는 밤부터 김치통에 이름을 붙이는 저녁까지.
EXNUL · 2026.11
“배추 몇 포기야?” 지호가 마당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물었다. 빨간 고무 대야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반으로 가른 배추가 소금을 머금은 채 천천히 숨이 죽고 있었다. 윤슬은 대답 대신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스무 포기.
부엌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절인 거 뒤집을 시간이다.”
결혼식을 다섯 달 앞둔 11월 마지막 주말이었다. 둘은 처음으로 같은 김치를 담갔다.
전날 밤, 배추를 뒤집는 시간
밤 열한 시. 휴대폰 손전등을 대야 가장자리에 세워 두고, 둘은 젖은 배추를 한 장씩 뒤집었다. 물이 손목까지 찼다.
“손이 안 느껴져.” 지호가 말했다.
“원래 그렇대. 우리 엄마가 그랬어.” 윤슬이 답했다.
지호가 장갑 낀 손을 털며 웃었다. 마당 끝 감나무 아래로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
밤새 배추는 소금을 먹고 숨이 죽는다. 아침이면 빳빳하던 잎이 전혀 다른 모양이 되어 있다.
배추는 보통 하룻밤을 꼬박 절인다. 중간에 한 번 위아래를 바꿔 주면 고루 절여진다. 줄기 쪽을 살짝 꺾었을 때 부러지지 않고 휘면 다 된 것이다. 처음이라면 절인 배추를 주문해 이 단계를 건너뛰는 집도 많다. 둘이 어디까지 맡을지 먼저 정해 두면, 다음 날 아침이 훨씬 덜 지친다.
양념은 엄마 손, 간은 둘의 혀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마당 평상 위에 비닐을 넓게 깔았다. 어머니는 무채와 쪽파를 버무린 양념을 큰 스테인리스 볼에 쏟고, 고무장갑 낀 손으로 크게 두 번 뒤집었다. 윤슬은 그 손을 보면서 똑같이 따라 했다. 한 박자씩 늦게.
어머니가 양념 묻은 배춧잎 한 장을 쭉 찢어 지호 입에 넣어 주었다.
“짜나?”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얼른 가로저었다. 평상 위에서 셋이 동시에 웃었다.
엄마의 레시피에는 숫자가 없다. “이만큼”, “조금 더”, “됐다”. 받아 적으려고 펜을 들면 어머니의 손은 벌써 다음 동작으로 가 있다.
그래서 윤슬은 적는 대신 찍었다. 고춧가루를 붓는 손, 젓갈을 넣는 그릇, 버무린 양념의 색. 동영상 한 컷이 메모 열 줄보다 정확했다. 간은 바로 먹을 통과 오래 둘 통을 나눠서 본다. 오래 둘 김치는 처음 맛볼 때 조금 짜다 싶은 쪽이 익으면서 맞아 간다.
몇 통을, 누구에게
점심은 갓 삶은 수육과 막 버무린 김치였다. 김이 오르는 도마 옆에서 어머니가 빈 김치통을 세었다.
“하나는 사돈댁, 하나는 언니네, 하나는 너거 집.”
“우리 집?”
지호가 되물었다. 둘은 아직 같이 살지 않았다. 신혼집에는 냉장고도 들어오기 전이었다. 그 통은 이사하는 날까지 지호네 김치냉장고 맨 아래 칸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누는 몫에는 맛보다 마음이 더 많이 담긴다. 상대 집에 보낼 통은 미리 그쪽 냉장고 칸 크기를 물어 두면 받는 사람이 덜 곤란하다. 김장 날짜 역시 양가 일정을 먼저 들은 뒤에 잡는다. 한쪽 집에서만 하는 김장이라면, 다른 쪽 부모님께 그날 사진 몇 장을 보내 드리는 것만으로도 자리가 조금 넓어진다.
날짜는 날씨가 정한다

김장 날짜는 달력보다 기온이 먼저 정한다. 날이 너무 따뜻하면 김치가 빨리 시고, 너무 추우면 절이는 마당에서 손이 먼저 언다. 민간 기상업체 웨더아이의 김장 시기 안내는 하루 평균기온이 4℃ 아래로 내려가고 최저기온이 0℃ 아래로 유지되는 때를 알맞은 때로 본다. 같은 해라도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그 시기는 늦어진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부엌 식탁 위에 김치통 세 개가 줄지어 섰다. 지호 차에 실어 갈 통들이었다. 사돈댁 몫, 신혼집 몫, 가는 길에 내려 줄 윤슬의 언니네 몫이었다. 윤슬은 마스킹테이프를 한 뼘 잘라 뚜껑에 붙이고 날짜를 적었다. 그 아래 한 줄 더. ‘지호가 처음 버무림.’
지호가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옆에 ‘조금 짬’도 써 줘. 내년엔 덜 짜게 하게.”
글 EXNUL 편집부
윤슬네 김치통 뚜껑 (작성 예)
- 담근 날
- 11월 마지막 토요일
- 함께한 사람
- 엄마, 윤슬, 지호
- 이번 간
- 조금 짬 (오래 둘 통)
- 다음엔
- 양념 버무리는 영상,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찍기
- 갈 곳
- 신혼집 냉장고 (이사 날까지 지호네 김치냉장고 아래 칸)
김장 시기 기온 기준은 웨더아이 ‘김장 적정시기’ 안내 기준(2026.10.18 확인)이며, 해마다 날씨에 따라 달라요. 등장인물과 사진 속 인물은 AI로 만든 가상 인물이에요.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EXNUL가 우리 말로 정리했어요. 숫자는 기준 날짜 이후 바뀔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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