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벽에 사진 세 장을 걸던 날
큰 웨딩 화보 한 장 대신 일상 사진 세 장. 신혼집 거실 벽 앞에서 둘이 보낸 일주일.
EXNUL · 2026.11
찌익. 마스킹테이프를 길게 뜯는 소리가 빈 거실에 울렸다. 바닥에는 액자 세 개가 엎어져 있었다.
정우는 연필을 귀에 꽂은 채 벽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물었다.
“웨딩 사진은 안 걸어?”
“그건 장롱 위에.”
라온은 벌써 가위로 종이를 자르고 있었다. 그날은 그랬다. 이사 온 지 열흘, 거실에서 아직 비어 있는 곳은 소파 위 벽 하나뿐이었다.
잘 나온 사진 말고, 오래 볼 사진
휴대폰 사진첩을 둘이 나란히 넘겼다. 손가락이 멈춘 건 세 장이었다. 처음 만난 해 여름 바닷가에서 흔들리게 찍힌 정우의 옆얼굴. 이삿날 짐이 들어오기 전 텅 빈 이 거실. 정우 어머니가 몰래 찍어 준 둘의 뒷모습.
“이거 초점 나갔는데.”
“그래서 좋아.”
매일 지나치는 벽에 걸 사진은 고르는 기준이 다르다. 한 번 보고 감탄하는 사진은 일주일이면 배경이 된다. 볼 때마다 그날의 소리가 떠오르는 사진은 몇 달이 지나도 눈이 한 번 더 간다.
세 장을 한 벽에 걸 때는 액자 크기와 색을 맞추면 세 컷이 한 장처럼 읽힌다. 흑백과 컬러를 섞기보다 한쪽으로 정하는 편이 차분하다. 휴대폰 사진을 크게 뽑는다면 인화하기 전에 원본 크기부터 확인한다. 작게 찍힌 사진을 키우면 흐린 게 아니라 뭉개진다.
못 박기 전에 종이부터
라온은 액자와 똑같은 크기로 종이 세 장을 잘라 벽에 붙였다. 정우가 그 아래에 연필로 작은 점을 찍었다. 그리고 사흘 동안 아무것도 박지 않았다.
첫날 저녁, 소파에 앉은 정우가 말했다. “너무 높아. 고개를 들어야 보여.” 둘째 날에는 라온이 왼쪽 종이를 손바닥 하나만큼 옮겼다. 셋째 날에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종이 본은 한 번에 정하지 않으려고 붙인다. 서서 볼 때와 소파에 앉아 볼 때 높이가 다르고, 문을 열 때 손잡이가 닿는지는 며칠 살아 봐야 안다. 소파 위라면 등받이와 액자 사이가 너무 벌어지지 않게, 액자끼리의 간격은 셋 모두 같게. 줄자가 없으면 손 한 뼘을 기준으로 삼아도 된다.
빌린 벽에는 먼저 묻는다

못을 꺼내 들던 정우의 손이 멈췄다. 라온이 서랍에서 임대차 계약서를 꺼내 특약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나갈 때 원래대로 해 놓는다는 문장이었다.
그날 밤 라온은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거실 벽에 작은 액자 세 개를 걸어도 되는지, 구멍은 어느 정도까지 괜찮은지. 답장은 다음 날 아침에 왔다.
빌려 사는 집이라면 못을 박기 전에 계약 내용을 다시 읽고, 집주인에게는 말보다 문자로 물어 기록을 남긴다. 벽을 손가락 마디로 두드려 보면 소리가 다르다. 통통 울리면 석고보드, 둔하게 막히면 콘크리트다. 석고보드라면 얇은 핀으로 작은 구멍만 내는 방법이 있고, 붙이는 고리는 견딜 수 있는 무게부터 확인한다. 아예 구멍을 내지 않으려면 벽에 긴 선반 하나를 두고 액자를 기대 세운다.
해가 지나가는 벽

일요일 오후 세 시쯤, 맞은편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가운데 액자 유리에 하얗게 걸렸다. 사진 속 뒷모습이 빛에 지워졌다. 라온이 휴대폰으로 그 벽을 찍어 보더니 웃음을 참았다. 노출을 잘못 잡은 사진처럼 가운데만 하얗게 날아가 있었다.
창 맞은편 벽에는 반사가 적은 무광 아크릴이나 유리 없는 액자가 덜 번쩍인다. 해가 오래 드는 자리라면 인화지 색이 바래기 쉬우니, 사진은 직사광선이 덜 닿는 쪽으로 옮긴다. 라온은 그 자리에서 가운데 액자 앞판만 무광 아크릴로 바꾸기로 했다.
해가 지고 나서야 둘은 바닥에 나란히 앉아 완성한 벽을 올려다봤다. 세 장이 같은 높이에 같은 간격으로 걸려 있었다.
라온이 말했다.
“내년 이맘때, 가운데 한 장만 바꾸자.”
글 EXNUL 편집부
한 번씩 틀리고 고친 것
- 눈대중으로 첫 못 자리 정하기
- 종이 본을 붙이고 사흘 살아 보기
- 웨딩 화보 한 장을 크게 가운데
- 일상 사진 세 장을 같은 크기로
- 창 맞은편 벽에 유리 액자
- 가운데 앞판을 무광 아크릴로 바꾸기
- 계약서보다 못부터 꺼내기
- 특약을 읽고 집주인에게 문자로 묻기
등장인물과 사진 속 인물은 AI로 만든 가상 인물이에요. 벽과 계약 조건은 집마다 다르니, 구멍을 내기 전에 집주인·관리사무소에 먼저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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